8남매 돌보시느라 80평생 고생만 하신… 우리 엄마 생애 첫 전시회

농심마니 2008/10/25 14:53



8남매 돌보시느라 80평생 고생만 하신… 우리 엄마 생애 첫 전시회


23일 서울 인사동 '아원 공방(工房)' 안 갤러리. 자수(刺繡) 및 그림 전시회가 열린 이 갤러리에 각기 8명의 얼굴이 그려진 그림 8점이 나란히 걸려 있다. 그리고 그림 옆에는 '우리 망내딸 언재 보아도 침착하다' '우리 다섯째 딸. 부자집 맏며느리 감이다'라고, 연필로 써 있다.

이 전시회는 무명(無名)인 여든네 살 홍옥순(洪玉順) 할머니를 위해 열렸다. 할머니가 10여년 전부터 만든 자수와 직접 그린 색연필 그림을 포함한 작품 55점이 다음달 5일까지 이곳에서 전시된다.

전문적으로 그림이나 자수를 배운 적이 없는 홍 할머니를 위해 이 전시회를 기획하고 두 달간 준비한 사람들은 할머니의 여섯 딸들이다. 전시회는 삯바느질을 해 자식들을 키웠고, 오로지 아이들에게 선물하려고 수를 놓아온 어머니를 위해 딸들이 마련한 특별 선물인 셈이다.

옆에 적힌 글의 맞춤법이 서툰 것은 할머니가 예순 살이 되던 해에 비로소 한글을 깨쳤기 때문이다. 지난해 세상을 뜰 때까지 별다른 직업 없이 지낸 남편 대신, 시아버지까지 식구 11명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삯바느질을 해야 했던 할머니는 생활이 겨우 편 지난 1984년에야 한글학원을 다닐 수 있었다. 평생 가슴에 남아 있던 못 배운 한을 떨치기 위해서였다.

할머니는 한글을 배운 다음 자녀들에게 한 통씩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내가 아직 서툴러서 맞춤법도 틀리고 글도 엉망이지만, 속에 있는 말을 마음으로 읽어주라'는 첫 대목을 읽고, 다섯째 딸 노인숙(50)씨는 울었다고 했다. 밋밋한 창호지 문을 말린 꽃으로 장식할 정도로 센스가 있던 엄마가 글을 못 읽는다는 사실을 인숙씨는 몰랐던 것이다.

한글을 깨친 후 할머니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일기를 썼다. 얼마 전 넷째 딸 인남(51)씨는 지난해 자신이 아팠을 무렵 엄마가 쓴 일기를 최근에 읽었다. '우리 인남이, 어서 낫기를.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몇 쪽에 걸쳐 나무아미타불만 계속됐다. "제가 아플 때 엄마도 함께 편찮으셨어요. 제가 낫고 난 며칠 후 일기엔 '! 니가 안 아프면 엄마는 그냥 낫는다'라고 적혀 있었죠."

자수를 수놓으면서는 작품마다 '엄마가'라고 세 글자를 사인처럼 박았다. 때론 옆에다 '어딘가에 파랑새가 있을지 모르니 힘내라, 인자야' 라고, 자녀에게 주는 글도 수놓았다. 모두 한글을 뒤늦게나마 깨친 덕분이었다.

"글을 배우니 자식들에게 마음대로 편지를 쓸 수 있어 좋다"는 홍 할머니는 이후 편지를 쓰면서 글만 쓰기 허전해 색연필로 그림도 곁들였다. 제일 먼저 그린 건 역시 자녀들 얼굴이다. 그 그림들을 자식들이 모아 전시회에 걸었다.

할머니는 15년 전 일흔 나이에 자수를 시작했다. 시장에서 실 뭉치를 보고 '저걸로 식탁보를 만들어 애들한테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손수 치자물을 들인 무명천에 꽃을 수 놓고, 막내딸이 어릴 때 입던 한복을 잘라 조각보를 만들었다.

할머니가 처음 바늘을 잡은 건 30여 년 전. 경찰 공무원 남편이 은퇴 후 옷가게를 하다가 망해 서울 응봉동 산동네에 자리 잡은 무렵이다.

둘째 딸 인순(56)씨는 "13평 쪽방에 11명 식구들이 누워 뒤척거리고 있으면, 밤마다 머리맡에선 재봉틀 소리가 들렸다"고 기억! 했다. 딸이 아버지를 원망할 때도 어머니는 재봉틀을 박으며 말했다.

"화 내면 건강에 나쁘다. 엄마는 너희가 건강하면 그만이야."

2년 전, 할머니가 인순씨에게 주려고 만든, 꽃을 수놓은 컵받침에도 '화를 내면 간과 눈에 나쁘다. 엄마는 그저 건강이 최고다'라는 글이 색실로 수 놓아져 있다.

할머니의 1남7녀 중 충남 공주에 사는 첫째 딸과 조계사에 불교 용품을 납품하는 아들을 제외한 여섯 딸들은 인사동·경복궁 부근의 공방 세 곳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1983년 손재주가 있는 셋째 딸 인아(53)씨가 싼 값에 인사동에 가게를 얻어 아원 공방 1호점을 낼 때 여섯째 딸이 언니를 도와 가게 운영을 돕기 시작했다. 평소 어머니의 솜씨를 닮아서인지 남달리 손재주가 뛰어났던 다른 형제들도 가세했다.

홍 할머니가 자수를 시작할 때 가장 격려를 많이 한 건 여섯째 딸 인정(48)씨다. 그러나 지금은 엄마를 말리기에 바쁘다.

"눈도, 허리도 아프셔서 요즘은 이제 그만하시라고 하죠."

홍 할머니는 즉답을 하지 않고 듣기만 했다.

"난 그냥 애들 목소리만 들어도 힘이 나더라고. 그게 에미인가 봐요."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입력 : 2008.10.24 03:20 / 수정 : 2008.10.24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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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사람과 사람 "농심마니"

농심마니 2006/12/13 21:52
농심마니
奧地(오지)에 산삼을 심으러 다니는 사람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앞줄 왼쪽부터 박인식(회장, 작가, 산악익). 송현(시인). 강찬모(화가). 최유진(공주영상정보대 교수). 이영기(도서출판 명상 대표). 김여옥씨, 뒷줄 왼쪽부터 전유성.김준근씨 (장소 : 로마니꽁띠)

전국 오지를 찾아 다니며 산삼 씨앗을 뿌리거나 묘삼(苗蔘, 2~3년생 산삼)을 심는 사람들이 있다. ‘농심마니’ 회원이 그들이다. 지난 1986년에 결성됐으니 역사가 꽤 긴 편이다.

현재 회원은 120여 명으로, 초창기 때나 얼굴들이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처음 모임이 만들어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박인식(작가) 씨가 17년째 회장을 맡고 있으니 ‘독재’도 어지간한 독재가 아니다.

이들은 매년 봄(3월말)과 가을(11월초) 두 차례 전국의 오지를 찾아 다니며 산삼 씨앗을 뿌리고 묘삼을 심는다. 모임이 만들어진 이후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다. 묘삼은 한 번에 대략 300~500주를 심는다. 농심마니가 ‘어디에 산삼을 심었다더라’ 하고 소문나면 큰일이어서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는 장소를 찾는 일이 만만찮다.

산삼 씨앗이나 묘삼은 강원도 삼척에 사는 박재명 씨가 제공한다. 박씨는 장뇌삼(인공적으로 씨앗을 뿌려 자란 산삼)을 재배하는 집안의 후손으로, 3대째 가업(家業)을 잇고 있다. 묘삼 500뿌리면 값으로 따지기 힘들 정도이지만 박씨는 언제나 흔쾌히 제공한다는 것이 박인식 회장의 설명이다.

박회장은 “1980년대부터 우리것 찾기 바람이 불었는데 이런 운동이 너무 관념적인 문화유산에 치우쳐 진정한 우리의 뿌리를 찾는 데는 소홀했던 것 같다”며 “산삼은 조물주가 한민족에게 준 선물로,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우리의 뿌리라고 생각해 뜻 맞는 사람들이 모여 모임을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 중에는 특히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많다. 시인 송 현·김홍성, 소설가 임헌갑, 화가 강찬모, 개그맨 전유성 씨 등이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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